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늘 건축적 이데올로기 앞에서 괴로워했고 창작의 고통 속에 살아왔다. 작품이냐 상품이냐의 기로에 서기도 했고, 미학이냐 전략이냐를 두고 논쟁했으며 자본의 유혹에도 수없이 흔들려 보았다.
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모서리를 다듬고 깎아내고 물에 적시며 나만의 건축관, 건축 개념을 만들어 왔다. 진정한 고민이 없으면 새로움도 없다는 믿음으로 쉼 없이 사유해왔다.
그리고 지금, 다시 건축을 바라보고 있다. 건축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-건축의 존재 이유, 디자인을 결정하는 동기, 건축을 통한 자아실현, 건축주의 경제적 이익과 효과, 사회에 끼치는 영향 - 등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. 어쩌면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은 예전과 비슷할 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변했다는 사실이다.
이제는 내 작품을 구현한다는 생각보다는 의뢰인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건축이고, 우리의 도시라 생각한다. 그것이 비록 일그러진 얼굴이라도 어쩔 수 없고, 조금 도드라져 보이는 건축이 탄생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.
지금까지 모든 건축에서 치열하게 고민했고, 더 잘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, 의뢰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왔다. 그리고 무엇보다도, 적어도 질 낮은 타협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. 그래서 이제는 작품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과연 잘 만들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에게 더 정직한 기준이 된다.
건축을 시작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. 기성 건축가로서 인생의 제 2막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,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회고 중이다. 건축가로서 나름대로 한 쪽 귀퉁이에 조그마한 건축 세계는 쌓아 왔다. 그 세계를 나는 '최선의 건축'이라 불러본다.